황종해
1579년(선조 12) ~ 1642년(인조 20)
자는 대진, 호는 후천으로 효자 황덕휴의 아들이다. 영남학파 정구와 기호학파 김장생의 문인으로 양대 학파를 접목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심정이기설을 짓고 람전향약을 손익하여 촌규범예를 만들었다.
1610년 탁영 김일손의 행장을 짓고 1611년(광해 3) 정인홍이 이언적, 이황선생을 모함하자 양호의 제생들과 함께 정인홍을 논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1613년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자 과거를 폐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인조반정후 조정에서 여러차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연구에 힘쓰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사후에 목천 유일의 유학자로 추앙되어 도동서원에 배향되고 허목과 김득신이 행장을 찬하고 안정복이 묘문을 지었다. 경연참찬관겸좌승지로 추증되었으며 후천집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