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기
1545년(명종 1) ~ 1601년(선조 34)
자는 경리, 호는 비풍이며 아버지는 선무랑 황윤림이다.
나이 십오륙에 시를 곧잘지어 이름이 났고 경서와 사기를 널리 통달하였으며, 후천 황종해의 학문적 토대를 이루게 하였다.
질병으로 대과를 중도 포기하고 내면을 향하는 학문에 전념하여 성현이 남긴책을 연구하고 반드시 체득하여 실천하였다. 고을 수령 조찬이 공의 풍도를 흠모하여 시를 지어 찬양하고 사후에 약천 남구만이 묘갈을 지었으며 공조참의에 추증되고 흥교사에 배향되었다. 비풍문집이 전한다.